지킬 것이 있는 인생

신앙적으로 우리는 ‘고난에는 유익이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의외로 고난을 겪고 있음에도 아무런 유익을 얻지 못하는 사람도 있음이 사실이다. 오히려 고난과 상처로 깨지고 상하는 경우도 있을때도 있다. 그렇다면 고난을 통해서 유익을 얻는 사람의 특징이 무엇일까? 그것은 ‘지킬 것이 있느냐 없느냐’ 의해서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시편 137편 1절에서 4절을 보면 이스라엘은 많은 고난을 당했다. 그리고 그 고난으로 인해서 깨끗해지고, 연단 받아 바벨론의 비참한 포로 생활에서 해방되어 본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는 지킬 말씀, 불러야 할 노래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시편 137:1-4


시편 137편 1절에서 4절을 보면 이스라엘은 많은 고난을 당했다. 그리고 그 고난으로 인해서 깨끗해지고, 연단 받아 바벨론의 비참한 포로 생활에서 해방되어 본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는 지킬 말씀, 불러야 할 노래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기억할 말씀 불러야 할 노래가 있는 사람은 고난이 닥쳐도 깨지거나 무너지지 않는다. 인생을 단순히 평탄하다고 하거나, 힘들다라고 치우쳐 한쪽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인생에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은 ‘힘든가 아닌가’ 하는 것이 아니라 ‘지킬 것’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목숨 걸고 지킬 약속과 가치가 있는 사람, 부르다 죽을 노래가 있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다. 가정도 교회도 마찬가지다. 좋은 학벌에 많은 물질이 있다고 좋은 집안이 아니다. 지킬만한 믿음이 있는 가정이 명품 가정이요, 목숨 걸고 외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가 명문 교회다. 이것이 영적 명예가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은 ‘고된 일’이 아니라 ‘헛된 일’이다. 어떤 목회자가 제일 힘든지 아는가? 고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자기가 하는 일이 헛수고 같고 의미 없는 사역을 하는것처럼 느끼는 사람이다. 바울은 그 어떤 어려움속에서도 쓰러지지 않았다. 그것은 지킬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그는 “주 예수께 받은 사명”(행 20:24)이라 고백했다. 고난이 문제가 아니다. 건강이나 물질이 문제가 아니라 항상 사명이 문제인 것이다.

사람이나 환경은 언제나 변한다. 순식간에 달라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사람이나 상황에 의존하면 항상 흔들리기 마련이다. 지금은 상황이 좋아서 안심한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불안하다. 상황이 다시 안 좋아지면 어떻게 하나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킬 것이 있는 사람은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 상황이 어떠하든지 주어진 길을 갈 뿐이다. 그러나 지킬 것이 없는 사람은 상황과 형편을 알아보려고 한다. 내가 이 길을 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계산하면서 신경을 쓴다. 그래서 고난이 온다고 하면, 미리 겁을 먹고 바닥을 헤메는 것이다.

세상의 최고 권세는 죽이는 권세이다. 그래서 최고의 형벌이 사형이 아닌가? 이 사실을 아는 마귀는 항상 우리를 죽인다고 위협한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죽이고 살리는 권세는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참새 한 마리도 떨어뜨릴 수 없는 것이 영적 이치가 아닌가? 지킬 것이 있는 인생은 하나님께 맡기고 상황을 넘어서는 영적 자유인으로 사는 것이다. 생명의 가치를 보여주며 산다. 이것이 믿음이다. 지금 나에게 지킬 것이 있는가? 그게 나의 사명이다. 그것을 붙잡고 나가야 한다. 그것 붙잡고 기도하는 것이다. 그것이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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